• 날짜: 2008-05-25
  • 장소: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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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벽두부터 읽기 시작한 <로마인 이야기>

약 3개월에 걸쳐 뭔가에 홀린 듯 읽었고, 내친 김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갈리아 전쟁기>를 읽고 있다.

승리한 로마 장군은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나오는 트로이군 총사령관 헥토르의 말을 입에 올렸다.

"언젠가는 트로이도, 프리아모스 왕과 그를 따르는 모든 전사들과 함께 멸망할 것이다."

뒤에 서 있던 폴리비오스가 왜 하필이면 지금 그 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폴리비오스를 돌아보며, 그리스인이지만 친구이기도 한 그의 손을 잡고 대답했다.

"폴리비오스, 지금 우리는 과거에 영화를 자랑했던 제국의 멸망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목격하고 있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내 가슴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승리의 기쁨이 아니라, 언젠가는 우리 로마도 이와 똑같은 순간을 맞이할 거라는 비애감이라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가 이런 말을 한 지 약 622년 후, 로마 제국도 멸망하게 된다.

로마 제국은 야만족이라도 쳐들어와서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끝에 장렬하게 죽은 게 아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도 없고 처절한 아비규환도 없고, 그래서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교과서는 서기 476년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해로 명기하고 있다. 그런데 어느 교과서도, 어느 로마사 권위자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해'는 말하지만 '달'과 '날'은 말하지 않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모르기 때문이다. 언제인지도 모르게, 그래서 '위대한 순간'도 없이, 그렇게 스러져갔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주려는 걸까. 번성하는 자는 반드시 쇠퇴한다는 것을 일관되게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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