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배구다. 체육관을 찾지는 못하지만 TV 중계를 가끔씩 시청하는데, 점수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도 어느 순간 연속 득점을 올려 차이를 벌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물론 이동공격이나 개인 시간차, 백어택, 블러킹 및 리베로의 활약 등 선수들의 조직적 움직임과 순발력은 어느 구기 종목과도 비할 바가 아니다.
한국배구협회에 보니 경기별 기록을 집계하여 제공하는데, 그 중 지난 1월 31일 있었던 LIG손해보험 대 대한항공의 경기는 5세트 풀 접전의 혈투였던 것으로 보인다.
(주의) 해당 자료는 인용 과정에서 오류가 있을 수 있음.
그림이 허접하지만 5세트 중에서 1세트의 득점 상황을 나열해 보면,
경기 초반에는 주거니 받거니 하는 상황 속에서도 LIG손해보험 쪽에서는 간간히 연속 득점 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 중반에는 대한항공 쪽에서 연속 득점이 나타나고, 종반에는 득점 간격이 불규칙해 보이는 것 같다. 기록 상으로는 선수 교체나 작전 시간 이용 등이 나타나고 있다.
10년 넘게, 1년 365일 한결같이 때리고 받고 훈련하는 프로 선수들이지만 간간히 보이는 이런 흐름(?)은 왜 생기는걸까? 과연 그 흐름이란 존재할까? 어설픈 배구 팬인 내가 보기엔 경기의 흐름이 있다고 보는데, 확인을 위해 통계의 검정 방법 중에 런 검정 Run Test이라는 분석방법을 이용해 보자(런 검정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별도 확인 바람).
런 검정이란 무작위 Random을 만족하는지를 비모수적 분석방법으로 검정하는 것이다. 만약 자료가 어떤 추세를 갖고 분포한다든지 또는 한쪽으로 치우쳐 분포한다든지 하면 무작위성은 소멸된다. 여기서 무작위라는 것은 불규칙성을 가리키는데, 양팀의 실력이 비등하다면 서로 간에 점수를 주고 받기하는 주기성을 갖게 될 것이고, 어느 한 팀의 실력이 월등하다면 점의 분포가 한 쪽으로 쏠림 현상을 보이게 될 것이다. 이게 아니라면 점(관측치)들은 불규칙하게 나열될 가능성이 높다.
참고로, 런 Run은 분류된 구분의 연속성이 끊기는 회수를 가리키는데 아래의 경우 런은 4가 된다.
남 여여여 남남 여여
그럼 그 불규칙성을 어떻게 알아내지? 난 잘 모르지만 선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게 있으니 적절히 이용하면 된다.
런 검정으로 배구 경기를 검토하려고 먼지 쌓인 책을 뒤적이니 N₁, N₂가 크다면(>10) 정규분포에 '근사한다'고 한다. '근사한다'는 얘기가 없다면 분포표를 별도 확인하거나 해당되는 경우의 수를 모두 구해야 하는 엄청난(?) 수고가 있어야겠지만, 이 말 한마디로 좀 더 수월하게 계산할 수 있게 된다.
그 결과는 양측검정 시 p 값이 0.0772 이다. 그러면 유의수준 0.05 < p 값이므로 귀무가설을 기각할 수 없다. 그런데 귀무가설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지?
그럼 1세트는 무작위성을 만족한다는건데 다른 세트는 어떨까?
1세트와 유사하게 초반에는 주고 받기가 형성되고 중반에는 연속 득점이 좀 더 눈에 띄고, 종반에는 다시 주고 받기가 형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검정 결과는... p값을 확인해 보면 0.0007로 유의수준 0.05에서 귀무가설을 기각한다. 즉 무작위성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경기 흐름 또는 쏠림 현상이 있다는 것이다. 세트별로 정리해 보면,
1세트를 제외한 다른 세트에서는 유의수준 0.05에서 무작위성을 만족하고 있지 않다. p값이 가장 낮은 5세트의 득점 상황을 그림으로 보자.
세트 전체에서 연속 득점은 적은 반면, 주고 받기가 꾸준히 유지된 것을 볼 수 있다. 주기성이 나타났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위의 결과는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5세트는 선수 교체 및 작전 타임 시간이 빈번해서 보는 맛은 좀 떨어진다. 농구의 4쿼터 처럼.
5세트 풀 접전의 백중세인 경기는 범실이 승패에 영향을 미친 경우가 높다. 아니나 다를까 5세트 경기 기록을 보니 대한항공의 팀범실(6)이 LIG손해보험(4) 보다 2개 더 많았다.
다른 경기도 그렇지만 배구 경기를 시청하다보면 경기의 흐름이 순간순간 느껴진다. 백어택 2개로 상대방을 압도하기도 하며, 블러킹 1개로 분위기를 순식간에 바꿀 수도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어떻게 끌고 갈지 또 끊을 지가 배구의 매력이 아닐까 한다.